산내암자

운문암

운문암

운문암은 고불총림 백양사의 선원으로 운문선원이 있다. 백양사가 창건될 즈음에 함께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나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백암산 꼭대기인 상왕봉에 자리한 운문암은 조선시대의 벽송, 정관, 백파스님으로부터 근대의 학명, 용성, 인곡, 석전, 만암, 고암, 그리고 서옹스님에 이르기 까지 많은 큰 스님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이 나라 선불교의 법통을 이어온 큰스님들이 주석하여 수행과 교화를 하였던 참선도량의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지금도 선방스님들이 여름, 겨울 안거 정진 때 최고의 선도량인 운문암을 앞 다투어 찾아들고 있다.
선객이라면 한 철 공부하고 싶어하는 참선수행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운문암 앞에서 멀리 보이는 많은 능선은 200봉의 군신들이 머리를 보아리고 있는 모습이고 맑은 날에는 광주 무등산이 잘 보인다. 아침에 구름이 끼면 저 산 밑에서 구름이 머물러 운문암이라 한다.(구름이 문을 만들다)

 


 

청류암

청류암

청류암은 고불총림 백양사의 율원으로 율을 연구하고 계율수행을 하는 율사스님들이 계신 곳이다. 고불총림 백양사 입구 매표소에서 마을로 가는 왼쪽 길을 따라 가다가 산의 정상 가까운 곳에서 청류암을 만날 수 있다. 1890년(고종27)에 작성된 ‘관음전중건기 (觀音殿重建記)’가 현존하고 있어 그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하는데, 현존 당우로는 관음전과 요사가 있다.
청류암에 얽힌 설화가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는 근세에 있었던 일로 하루는 주지스님이 잠을 자는데 수성리(지금은 백양댐 수몰지역)에 가면 부처님이 계시니 그 부처님을 관음전에 모시라는 현몽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 가니 과연 부처님이 계시어 그 불상을 얻게 된 연유를 물으니 그곳에 가난한 부모와 사는 젊은 처녀가 보리밭에서 김을 매다가 땅속에서 캐어낸 불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처녀는 불상을 잘 모시고 공경해야 하기에 집 뒤 바위 밑에 모시고 조석으로 정안수를 떠올리며 부모님이 건강하고 부자 되기를 빌었다고 얘기하였다. 그 때 청류암 스님이 와서 백미 3말을 주고 부처님을 모시고 가겠다하니 쾌히 허락을 했다. 그 부처님이 영험이 신통하여 공양을 올리고 축원을 드리면 소원을 한가지씩을 꼭 이루게 되어 많은 신자들이 구름같이 모여 청류암이 부찰이 되고 그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을 따로 짓게 되니 그 전각이 바로 청류암 관음전이다. 그 후, 그 처녀는 백미 3말이 없는 셈치고 이자 쌀을 계속 불렸는데 그 쌀을 가져가는 사람은 재수가 있고 사업이 성취되어 이자에 원금 이상을 보태어 십년이 채 되지 않아 그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어 항상 청류암 부처님께 공양예배 드렸다 한다.
현재 그 불상은 6.25때 국묵 스님이 담양으로 난을 피해 옮겨 놓았는데, 분실되어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약사암

약사암

약사암은 백양사 뒤 백학봉 아래에 있는 약사여래 기도 도량이며 그 옆에 영천굴이 있다.
영천굴은 20평 남짓한 천연석굴로 영험하다는 영천이라는 샘이 있으며, 영천굴의 유래로는 옛날에 영천굴에는 수도하는 스님이 살았는데 바위와 바위 틈새 에서 항상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손님이 와서 공양을 대접하기 위해 쌀이 더 많이 나오라고 막대기로 쑤셨더니 그 뒤로는 쌀이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고한다. 그 물이 지금의 영천굴 약수이다. 이 약수는 병을 낫게 한다하여 많은 기도객들이 와서 기도하며 약수를 음용하기도 한다.
현재는 석조 관세음 보살상을 모시고 기도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수도하는 별채도 3칸 지어 기도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천진암

천진암

천진암은 백양사에서 쌍계루 사이의 길을 따라 약 500미터 정도 올라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천진암(天眞庵)은 고려 충정왕 2년(1351年)에 각진 국사가 창건(創建)하였고, 1690년에는 소요대사가 천진암(天眞庵)을 백양사 종무소로 설치 운영하였으며, 1701년에 비구니스님 수도장(修道場)으로 지정(指定)된 산내(山內) 유일한 비구니 처소입니다.
6.25사변 전에는 90여분의 비구니스님이 정진할 정도의 큰 수행도량이었으나 전쟁으로 천진암(天眞庵)이 소실되자, 전소된 천진암 터에 비구니 정공스님(~1971)이 천막을 치고 40평 규모의 인법당을 만들어 암자로서의 명맥을 유지하셨습니다. 그 후 20여 년간 방치(放置)된 상태로 퇴락해 가던 암자를 1986년 비구니 정안(淨岸)스님이 방장 서옹(西翁) 큰 스님의 뜻을 받들어 법당(法堂), 삼성각(三聖閣), 요사채, 화장실을 복원(復原)하고, 비구니 선원(禪院) 불모지(不毛地)였던 호남지역에 1996년 처음으로 비구니 선원(禪院)을 개원(開院) 하여 지금까지 비구니 수행도량(修行道場)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