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응율사 탄영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30본말사법에 따라 백양사의 초대 주지로 부임했다.
백양사의 근대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환응스님은 청정한 수행생활로 이름 높았다. 1847년(헌종 13) 전북 무장(茂長)에서 태어난 스님은 아버지 김기우(金基愚)와 어머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나 14세때 고창 선운사에서 성시장로(醒諡長老)를 은사로 하여 출가해 1865년 19세때 경담(鏡潭) 서관율사(瑞寬律師)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8년 동안 각지를 유력하면서 선과 교를 탐구, 서관의 법을 이어 10년 동안 경을 강의했으며, 백암산 운문사, 지금의 운문암에서 강단을 열어 화엄학을 가르쳤고 참선수행과 율행에 철저한 모습을 보였다. 아침 저녁으로 관세음보살과 16나한에게 분향 공양하기를 만년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았다. 1912년 백양사 주지로 부임한 이후 흩어진 승풍과 기강을 바로 잡는 데 주력하였고 1928년에 조선불교 중앙종회에서 교정(敎正)으로 추대되어 활동을 하다가 만년에는 운문암(雲門庵)곁에 지은 우은란야(愚隱蘭若)에서 좌선하다가 1930년 법랍 70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석전문초와 조선불교통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