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결사문

참사람 결사문

세계인류 여러분!

과학문명이 붕괴에 직면하고,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처한 현대를 ‘참사람 원리’로써 극복하여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대를 이룩합시다. 현대는 과학문명시대입니다. 이 과학문명에 기초적 원리를 제공해 준 철학자는 데카르트*인데,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자기는 존재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의심하는 자기, 즉 사유(思惟)하는 자기는 모든 인식 중에서 최초이면서 가장 확실한 인식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사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의심하는 자기를 데카르트는 정신,* 즉 의식,* 즉 이성,* 즉 오성(悟性)*으로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이성을 확실한 존재라고 한다면, 이 이성이 명석판연(明晳判然)하게 인식하는 물질 역시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데카르트는 이 물질의 속성을 연장(延長)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자연을 기하학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근대 자연과학적 입장으로 발전되어 갔습니다.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정신과 연장하는 물질만이 확실히 존재하는 실체(實體)로 인식한 것입니다. 르네상스* 이후 중세 기독신학이 극복되고 인문주의가 개화함으로써 자연을 목적론*적(目的論的)으로 설명하지 않고 기계론*적(機械論的)으로 설명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되고 자연은 인간의 하인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래서 물질은 암암리에 인간의 지배의지와 깊은 비밀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의지는 인간의 욕망적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관념철학자 헤겔*에 반립(反立)하여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세계이성(世界理性)이 아니라 맹목적(盲目的) 의지라고 했습니다. 이 맹목적 의지는 칸트*가 말하는 이성적 의지가 아니라 생존하려는 욕망, 즉 자기 생명을 후세에 존속시키려는 욕망이니 식욕과 성욕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19세기 말 포이어바흐*는 플라톤에서 헤겔까지의 이성철학을 비판하면서 인간을 움직이는 기본 원동력은 이성이 아니라 욕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에서 니체*가, 포이어바흐에서 마르크스*가 나오게 됩니다. 현대는 이처럼 쇼펜하우어와 포이어바흐에서 시작된 욕망철학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의식주에 대한 욕망을 인간의 주요한 욕망이라고 생각했으며 니체는 그 욕망의 본질은 권력욕이라고 했습니다. 그 뒤에 프로이트*가 나와서 인간의 기본적 욕망은 성욕이라고 했습니다. 이상에서 개괄한 바와 같이 서양문명은 이성적 인간에서 욕망적 인간으로 전락하여 야만으로 복귀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다시 야수적인 본능생활로 복귀한다면 야만적인 투쟁의 결과로 초래될 수 있는 비극적 종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대문명의 병근을 치유해서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인간주의(人間主義)를 초월한 ‘참사람주의’라고 확신합니다. 자각한 사람의 참모습인 참사람은 유물(唯物)에도 유심(唯心)에도 무의식에도 하느님에도 불조(佛祖)에도 구속받지 아니하며 전연 상(相)이 없이 일체상(一切相)을 현성(現成)하나니, 현성함으로써 현성한 것에나 현성하는 자체에도 걸리지 아니하여 공간적으로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세계를 형성하고 시간적으로는 영원무한한 역사를 창조하는 절대주체의 자각(自覺)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각이지 외부지각(外部知覺)의 대상으로도 내부지각(內部知覺)의 대상으로도 각(覺)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그 자체에서 각(覺)하는 능동적 주체입니다.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욕망철학의 결과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는 멸망이냐 생존이냐 하는 문명사적(文明史的)인 한계상황(限界狀況)*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참사람주의’로써 이 상황을 활연히 타개하여 새로운 문명의 지평(地平)을 열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현대문명의 병근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치유책을 말해 보겠습니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을 설명하는 중심원리는 이성이 아니라 욕망이며 그것은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생명이 곧 욕망이라 하게 되면 인간사회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게 되어 타락하게 되니 이것이 현대의 절망적 위기의 최대 화근입니다. 참사람 입장에서는 욕망적 인간이나 이성적 인간은 생사를 면할 수 없는 생사적(生死的) 생명(生命)으로 봅니다. 이 생사적 생명이 절대 부정되어 크게 죽어서〔大死〕, 다시 절대 긍정되어 크게 살아나는〔大活〕데에서 영원의 생명이 소생하는 참사람의 참모습이 있습니다. 이 경우 크게 죽음〔大死〕이나 크게 살아남〔大活〕은 모두의 자각적(自覺的) 경험입니다. 이 경험은 시간적·공간적 경험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해서 시공의 근원이 그 스스로 이룩하는 경험이니 주체적·선험적(先驗的) 경험이라 하겠습니다. 이 참사람 생명관은 시간·공간을 초월한 영원의 생명관이니 모든 인간, 모든 생물 나아가 대자연은 영원의 생명으로서 모두 절대적 존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물과 대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하여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르네상스에 즈음하여 중세기 신율성(神律性)에서 해방되어 인문주의적(人文主義的) 자유를 누리며 역사를 창조해 왔습니다. 그 결과 현대에는 과학력·집단력·정보력이 과도하게 발달하게 되었고, 오히려 인간은 거기에 결박되어 주체성을 상실하고, 자기 정신을 잃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참사람은 일체의 한정(限定)을 절(絶)하고 형상을 절(絶)할 뿐만 아니라 무한의 자기부정을 자유로 하므로 무(無)라고도 합니다. 이 무한의 자기 부정하는 무(無)에서 무한의 능동적 적극성이 나오며, 이것을 주체(主體)라고 합니다. 이 주체는 무한히 자기 부정하고, 무한히 자기 실현하여 일체 가운데 자유자재하게 활동합니다. 이 근원적 주체인 참사람은 세계를 형성하고 역사를 창조하는 작용을 합니다. 능동적 주체로서 참사람은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합니다. 우리가 이 참사람으로 살 때에 이 참사람은 현대과학문명의 노예로 전락한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현재의 인간생활은 번잡번망(煩雜繁忙)하기 짝이 없으며, 전지구적(全地球的)으로 욕망철학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욕망대로 살아간다면 질서가 파괴되고 사회가 혼란하게 됩니다. 더구나 사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가정까지 파괴되고 있으니 인류의 미래는 참으로 우울한 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사람주의로 세계를 건설하고 역사를 창조한다면 멸망에 직면한 인류를 구제할 수 있습니다. 참사람의 근본구조는 인류를 관통하고 있는 보편적 일(一)과 개별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다(多)가 서로 상호 필수적인 계기로 되어 있습니다. 참사람은 일(一)과 다(多)가 불이일체(不二一體)이면서 거기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자유자재하게 일다일여(一多一如)하면서 역사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 참사람은 사심과 사리사욕이 없어, 진실하고 공명정대하면서 한량없는 자비심이 저절로 우러나옵니다. 이러한 참사람 사회는 서로 신의를 지키고 서로 존중하며 서로 도와 평화스러운 세계를 이룩하게 됩니다.

현대사회의 최대 문제는 지구환경의 파괴와 생태계의 오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성비라든가, 오존층 파괴라든가, 사막의 증대라든가, 대기오염, 강과 바다의 수질오염 등은 인류의 생존에 위협을 줄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과학문명의 원리바탕이 되고 있는 서양철학이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를 합리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사람 입장에서는 인간과 대자연을 불이일체(不二一體)이며 영원의 생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과 자연환경의 관계에 대해서 과거 조사(祖師)스님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삼조승찬(三祖僧璨)* 스님은《신심명(信心銘)》에서 말씀하시기를

진실 여여한 진리의 세계에는
나도 없고 남도 없어라.
빨리 상응하고자 한다면
오직 둘이 아니라고 말하리.
둘이 아니고 모두 한 가지이니
포용하지 못할 것이 없구나.

眞如法界 無他無自
要急相應 唯言不二
不二皆同 無不包容

하시고, 영가조사(永嘉祖師)*는《증도가(證道歌)》에서

마음거울 밝게 비추어 걸림없으니
그 빛이 온 누리에 두루하였네.
삼라만상의 그림자 그 가운데 나타나고
한 덩어리 둥근 광명 안팎이 없네.

心鏡明鑑無碍 廓然瑩徹周沙界
萬象森羅影現中 一顆圓明非內外

라 하시고, 임제조사(臨濟祖師)는《임제록(臨濟錄)》에서

광명이 온 누리에 사무쳐
만법이 일여하다.
마음법은 형상이 없어
온 누리를 꿰뚫어 통한다.

光透十方 萬法一如
心法無形 通貫十方

비로자나부처님 세계에 들어가서
곳곳에 국토를 다 나투나니라.

入毘盧遮那法界 處處皆現國土

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조사스님들은 참사람에게 있어서 인간과 대자연은 불이일체요, 영원의 한 생명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입장에서 인간이 대자연을 잘 보호하고 존중한다면 지구환경 파괴와 생태계 오염을 막을 수 있고 나아가 전 지구를 청정불국토(淸淨佛國土)로 장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평화 문제는 인류가 멸망하느냐 생존하느냐 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전멸하느냐 생존하느냐 하는 절대적 위기의 문제입니다. 현대인들은 세계사를 발전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 듯합니다. 현재는 언제든지 모순대립이 내포되어 있으며, 이 모순대립이 무제한적으로 투쟁해 지양(止揚)*되어 나가는 것을 이른바 ‘발전’*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변증법*적(辨證法的)·목적론적(目的論的) 역사관입니다. 그러한 경우 진실한 평화는 성취될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평화는 있을 수 없고 항상 미래에 쟁취될 수 있다고 기대될 뿐입니다. 그런데 참사람에 있어서 평화는 바로 지금 현재입니다.

여기에서 대립모순은 바로 이 본래적 평화를 근저로 하여 대립 모순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한 예로서 가정의 사랑〔家庭愛〕을 들 수 있는데, 한 가정의 사랑은 미래에 쟁취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재에 있으며, 여러 가지 가정문제 해결의 원동력이 됩니다. 가족의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이것을 투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가정파탄이 올 터인데 가정애(家庭愛)의 바탕에서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절대애(絶對愛)는 신(神)만이 가지고 있고, 인간은 신의 절대애에 의지하여 인인애(隣人愛)를 인간들끼리 실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인인애는 신의 절대애에서 파생된 이차적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참사람은 절대애의 주체가 되는 것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본래로부터 자비의 주체입니다. 신의 절대애에는 신과 인간 간의 불평등한 주종적(主從的)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참사람의 참사랑은 횡(橫)적 넓이〔廣〕의 평등이며, 종(縱)적 깊이〔深〕의 평등입니다. 참사람 그 자체가 내용적·실질적으로 광대 심원한 공간(空間)과 같이 절대유일하면서도 보편적 평등함입니다. 이와 같이 횡과 종으로 평등한 것이 참으로 평등의 자비이며 무연의 대비〔無緣大悲〕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애견(愛見)의 자비가 아니라 대지혜(大智慧)를 근거로 하는 절대평등의 사랑〔大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종의 자비는 대안심(大安心)의 경지이니 절대근원적 인간의 주체입니다. 현재 세계는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국가’라고 하는 것은 범세계적인 근거에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세계와는 별개의 입장에서 성립된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위한 국가가 아니라 도리어 국가를 위한 세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국가지상주의(國家至上主義)가 되어 만약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는 결국 국가이기주의(國家利己主義)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경우 이기주의적 국가를 간섭하고 조정할 수 있는 초국가적(超國家的) 국제연합(UN) 같은 것이 있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대에는 초국가적이라고 하는 국제법(國際法)도 국가이기주의의 한계 내에서만 효력을 발생할 뿐 최후에 가서는 초국가적 권위를 갖지 못하고 결국 유린당하고 맙니다. 세계와 국가의 관계는 전체와 개체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이상적인 조화를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세계평화가 항상 위협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초국가적 기관이라고 하는 국제연합(UN)은 현재의 ‘국가’라고 하는 것이 의연히 존속하고 있는 한, 양적으로만 모든 국가를 한데 엮어 놓았을 뿐, 질적으로는 개별 국가의 국가이기주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채 오히려 국가이기주의의 각축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초국가적 기관은 현재의 국가들이 전일적(全一的) 일(一)로 돌아가서 전체적(全體的) 일(一)의 가운데로 해소해 버리는 근본적 부정이 있지 아니하면 본질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개별 국가가 절대주체로 되어 있었지마는, 이번에는 역으로 세계가 주체가 되어서 그 세계의 자기한정(自己限定)으로 된 자치기관 같은 것이 내부로부터 자발적으로 생성되어서 그것이 이른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국가’로 형성되어 나와야 합니다.

참사람은 절대적 주체로서 본래로 자비의 주체이며, 미래에 도달하는 자비가 아니라 즉금(卽今)의 현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참사람은 자비를 동기로 하여 행위하게 됩니다. 인간의 참모습은 본래로 참사람이니, 모든 인간이 자비로 행위할 때 이 지구는 종횡무진하게 자비의 망(網)으로 포용된 세계가 됩니다. 따라서 이 현실세계의 폭력성·잔악성 등 실로 극악살벌한 공기를 일전하고 절대애인 자비로써 서로 포용하는 우애로운 세계를 건설합시다. 모든 사람들이 본래 참사람이지마는 실지로는 참사람으로 현존(現存)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참사람답게 순응해서 행동함으로써 세계평화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봉건제의 이념이었던 신중심주의(神中心主義)가 붕괴하고 신신앙(神信仰)에서 인간신앙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곧 인문주의(人文主義) 시대가 도래하여 인간과 이성과 진보의 관념이 근대를 지배하는 신념이 되었습니다. 현대의 진보에 대한 신념은 과학의 발전에 의해 더욱 지지되고 있습니다. 생산력의 증대, 교통·통신·정보력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현대인은 역사가 진보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과학을 발전시킴으로써 인간은 무한히 진보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근대주의자, 시민주의자, 미래주의자는 진보의 신념으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의 지성인은 ‘진보적’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알며 ‘보수적’이라는 말은 ‘반동적’이라는 의미와 같게 여김으로써―반동이란 곧 진보와 반대되는 말로서―악(惡)의 의미를 띠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역사의 앞에 출생한 사람보다 뒤에 출생했다는 이유로 현명하다는 것이 진보사관의 논리적 결론이라 할 것입니다. 현재의 젊은이들이 나이 먹은 사람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고 존경하지 않는 것은 이것을 반영하는 풍조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성과 진보의 신념만 가지고는 인류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신과학운동가, 환경보호주의자, 탈근대주의자를 비롯한 다수의 지성인들이 주장하는바 분명한 사실이 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인류 역사는 역사창조 원리가 어떠한가, 또 거기에 따르는 역사창조가 어떠한가에 의해서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으며, 발전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습니다. 인류가 훌륭하게 잘 살려면 인간주의도 초월하고 신(神)의 노예상태에서도 자유로이 해방되어 어디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활발발(活潑潑) 무애자재(無碍自在)하며 융통무변한 참사람주의로 새 역사를 창조하여야 하겠습니다. 또한 참사람을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참사람에게도 걸리지 아니하여 호호탕탕(浩浩蕩蕩) 자유자재하게 되지는 못하더라도 참사람 서원(誓願)대로 순응해서 새 인류 역사를 창조하여 진실하고 행복한 세계를 건설합시다.

참사람 서원

첫째, 무상무주(無相無住)의 참나를 깨달아 자비생활을 합시다.
둘째, 어디에도 걸림없이 자유자재하여 세계인류가 평등하고 평화스럽게 사는 역사를 창조합시다.
셋째, 자기와 인류와 생물과 우주가 영원의 유일생명체(唯一生命體)이면서 각각 별개이므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도와서, 집착함이 없이 진실하게 알고 바르게 행하며,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세계를 건설합시다.

(불기 2539[1995]년 初冬)